기부팔찌 : 잊어 버려야 할 3가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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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천신학대학원초등학교에서 실천신학을 테스트하면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으로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게 됐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령 안쪽에서 함께 친교를 나누며 '세움'을 받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다같이 '보냄'을 받은 공동체다. 그러니 교회 다체로운 구성원이 각자의 목숨 속에서 하나님나라 가치를 품고 인생을 살아 내는 것이 이것들보다 중요합니다. 교회의 존재 원인은 교회가 잘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목숨에 있다. 다시금말해, 사랑이 요구되는 세상과 타자를 위해 교회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과연 주님께서는 내가 여성 담임목사로서 어떤 형태으로 목회해 나가시기를 원하실까' 하는 걱정이 더해졌다. '여성주의적 목회'는 내가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걱정은 교우들과 스스로 만나면서 약간씩 달라져 왔다.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말씀을 맡은 이로서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다만, 동시에 그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각 지체의 빛깔과 목소리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느끼게 됐다. 결국 그 말씀을 세상 속에서 살아 내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교회'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뜻에서는 내 예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목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는 목표 의식과 비전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을 열고 교우들 음성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서 나와 저희 교회 공동체에게 교회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는 의식이 형성됐다.

처음부터 우리 교회가 어떤 공동체이길 바라는지 교우들과 다수인 이야기를 나눴다. 정답을 정해 놓지도, 빠르게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목회자를 비롯해 연장자·직분자 등 어느 누구도 발언을 독점하지 않기를 바랐다.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는 서로를 존중하며 의논을 나눌 대비가 돼 있었고, 각자가 자기의 음성을 냈다. 교회 덩치가 작으니 서로 이런 경우이런 경우 논의해서 다양하고 새로이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첫해에는 공교회로서 의미를 살려 '교회력에 따른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뒤에는 설교에 질문과 대답을 포함된 대화가 들어가면 좋겠습니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러해서 이듬해부터는 특별 절기 때를 빼고서는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대화식 말씀 나눔 시간을 가졌다. 목회자가 우선해서 각 본문의 인지를 도와주는 이야기을 하여 핵심 주제를 전하면, 교우들이 함께 질문과 깨달은 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비교적으로 기한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유연함을 가진 교회여서 그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 같다. 

이처럼 대화하며 교회를 같이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저희 교회의 지향이 약간씩 불러오게 됐는데, 기부단체 남들의 지향은 저들이 가진 요건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우선 교우들의 거주지가 멀리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뻔하게 공간을 소유하기보다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게 됐다(며칠전 공유 사회적 관점에서 예배당 공유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많이 있는데 반가운 일이다). 한편 주일예배 외에 다른 평일 예배나 그룹이 없는데, 이는 모이 문제는 예배보다 흩어져 드리는 '인생의 예배'를 중시하는 그들의 지향과 자연스레 맞아떨어진다. 이처럼 그들의 지향은 코로나 팬데믹 속에 더 빛을 발했다. 공간 중심, 모이는 예배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꾸로 서둘러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수 있었고, 일방향적인 매체가 아닌 쌍방향적 토론이 최대한 모습의 오프라인 예배·모임을 하며 더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